산 이야기

주왕산 이야기

솔송나무 2019. 10. 29. 12:03

주왕산(周王山, 721m)

산행날짜 : 2019년 10월 27일 맑은 일요일

누구와 : 고*중동문 산악회 따라서

목적 : 추억을 회상하며

  

주왕산은 태백산맥의 남단에 위치하며 그 주위에는 600m가 넘는 고봉이 12개나 솟아 있으며 암벽으로 둘러 싸인 산들이 병풍처럼 이어져 석병산이라고도 불리웁니다. 산세가 웅장하고 사계절 경관이 뛰어나며 연꽃 모양을 한 연화봉과 만화봉, 주왕이 무기를 감추었다고 하는 무장굴, 신선이 놀았다고 하는 신선대와 선녀탕, 웅장함을 자랑하는 깃대봉과 급수대, 학소대, 시루봉 그리고 제1, 제2, 제3 폭포 등은 경승지로 뛰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합니다. 그중에 으뜸은 석문으로 주왕산의 아름다운 비밀의 문을 열어주기에 충분합니다.


주왕산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전설의 주인공은 중국 진나라의 주도(주왕)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당나라 때 스스로를 후주천왕이라고 부르며 진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역모는 실패하고 그는 군사를 끌고 이곳 청송 땅으로 몸을 피하고 산으로 숨어들어 산문이 되는 주방천 협곡에 산성을 쌓고 재기를 꿈꾸죠. 그러나 그는 당나라의 요청으로 토벌에 나선 신라 군사에 의해 주왕굴에서 최후를 맞이합니다. 그래서인가 주왕은 이 산자락에 적지 않은 이야깃거리를 남기고 있습니다. 신라와 당나라의 그 시대상황과 나라사이의 관계를 보면 이 전설의 현실적 개연성은 넉넉해 보입니다.

그러나 주왕이 중국에서 온 이가 아니라 신라말에 반역을 꾀했던 인물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 산의 이야기는 빈번히 왕권이 교체되는 등의 정치적 혼란기였던 신라 하대에 반란을 일으킨 김헌창과 그의 아들 김범문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합니다. 920년께 낭공대사가 썼다는 <주왕사적>에 기록되어 있는 주왕산의 전설이 그 근거라는 것입니다. 김헌창은 선덕왕에 이어 왕으로 추대되었으나 왕권을 빼앗긴 김주원의 아들이구요. 김범문의 제자였던 낭공대사는 김헌창의 난을 중국의 이야기로 숨기는 방식으로, 쉬 드러낼 수 없었던 혁명의 역사를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개연성도 앞서 언급한 주도의 전설에 뒤지지 않고 오히려 설득력이 있습니다.


주왕산의 아름다운 모습들,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연화봉,병풍바위와 급수대, 대전사, 석문


상의주차장 --> 대전사 --> 자하교 --> 학소대 --> 용추폭포(지1폭포) --> 절구폭포(제2폭포) --> 주왕암 --> 주왕굴 --> 대전사 --> 주차장 (휴식시간 포함 3시간 30분)


사과의 고장 청송, 차창밖으로 보이는 사과밭 풍경

주왕산 입구에 들어섰는데 차와 사람이 너무 많아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차가 주차장까지 가지 못해서 내려서 걷습니다.


상가주변을 지납니다. 많은 사람들


나무 공예품 상점


대전사입구


대전사에서 주왕산 깃대봉을 배경으로


품앗이 사진


오늘의 주인공 *휘


보광전앞 석탑


보물 제1570호 보광전


많은 인파를 뚫고 산을 오릅니다.


솔부엉이가 이곳 주왕산에 서식하고 있다는군요.


용추폭포 방향으로


단풍을 보기위해서 많은 인파가 몰렸는데 아직 푸른 나뭇잎의 모습이 많습니다.


아들바위, 바위를 등지고 다리가랑이 사이로 돌을 던져 바위에 올리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맑은 가을날 숲을 걷는것 보다 더 좋은것이 있을까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숲을 찾습니다.


아직은 단풍보다 사람들의 울긋불긋함이 더합니다.


계곡옆으로 난 탐방로를 따라 오릅니다.


계곡옆의 단풍나무는 울긋불긋 물들었군요.


옹기종기 모여 점심을 먹는 산객들


저희도 큰 소나무아래 계곡옆에서 점심을 먹기로 합니다.


계곡물이 흐르는 좋은곳에 자리를 폅니다.


각자 준비한 도사락을 풀어 놓습니다.

 

아름다운 계곡의 모습입니다. 점심먹는 장소 위쪽 그림


점심먹는 장소 아래쪽 그림


이 계곡가에 봄이면 아름다운 수달래꽃이 피어납니다.


계곡 맑은물엔 물고기들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이 계곡엔 주왕의 피가 꽃이 되었다는 수달래(수단화,산철쭉)에 관한 전설도 이어져 내려옵니다.

오랜 세월을 두고 냇가에 뿌리를 박고 있는 붉은 수단화는 매년 오월이면 그 아름다운 자태를 잃지 않은 채 슬픈 사연을 안고 다소곳이 꽃을 피웁니다. 수단화 또는 수달래란 이 꽃은 다른 지방에선 좀처럼 구경할 수 없는 꽃으로 여기 주왕산 계곡에서만 피는데 꽃 빛깔은 진달래와 비슷하나 약간 더 붉은 편이며 생김새는 철쭉(연달래)과 비슷하고 그 키나 나무의 생김새도 철쭉이나 진달래와 닮은 데가 많습니다. 5월초에 계곡을 따라 수단화가 피면 꽃이 냇물에 비춰 붉은 물이 흐르는 듯 하답니다. 이와 같이 아름다운 수단화에는 남모르는 서러움이 숨어 있으니 주왕이 이곳에서 신라군사와 싸우다 힘이 다해 마장군 형제의 화살에 맞아 그의 피가 주왕굴에서 냇물에 섞여 계곡을 따라 붉게 흘러 내렸는데 그 이듬해부터 이 주왕산에는 이제까지 보지 못하던 꽃이 계곡과 내를 따라 피기 시작했으며 사람들은 주왕의 피가 꽃이 되어 핀 것이라 해서 수단화(壽斷花)라 이름 하였다고 합니다. 그 뒤 해를 거듭할수록 냇가의 수단화는 더욱 퍼져 주왕산을 아름답게 장식해 왔으며 특히 5월이 되면 어김없이 피어나 우아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산행팀을 제외한 계곡 탐방팀 단체사진


연화봉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단풍속을 걷습니다.


단풍이 물드는 과정입니다. 연둣빛에서 노랗게 또 붉게 물들어 갑니다.


단풍은 사실 물드는 과정이 아니라 물빠지는 과정입니다. 일조량이 줄어들면서 광합성 작용을 하지 않아 여름동안 푸르렀던 엽록소가 빠지면서 나무 자기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붉은 안토시아닌을 지닌 단풍나무, 카로티노이드 생강나무, 탄닌의 참나무 등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겨울이 되면 그것마져 떨구어 버리고 휴식을 취하게 되는 것이죠.


급수대


화산폭발 과정에서 생긴 주상절리로 신라 선덕왕때 상대등이었던 김주원이 다음 왕위를 승계받지 못하고 피신하여 이곳에 궁궐을 짓고 살았다는데 물이 없어 꼭대기에서 계곡물을 끌어올려 먹었다는 전설이 있어서 급수대라 합니다.


시루봉


시루를 닮아 시루봉이라는데 사람 얼굴 닮아 보입니다.


기암괴석 위에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동양화 풍경


석문을 들어가는 입구에 사람들로 정체현상이 일어납니다.


학이 살았다는 학소대를 배경으로



제1폭포인 용추폭포


용추폭포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석문의 모습입니다.



비밀의 요새에 들어선 느낌


석문 안쪽에 주왕이 거주 했다면 찾기 쉽지 않았겠죠.


단풍반 사람반


제2폭포를 향해서


절구폭포를 제2폭포라 합니다.


제2폭포 가는길


절구폭포


중간에 절구모양 만들며 이단으로 흘러내리는 폭포, 이곳을 반환점으로 하산합니다.


우린 하산하는데 이친구는 아직도 오르는 중


하산하며 보는 학소대


하산하며 보는 연화봉


주왕암 방향으로 향합니다.


전망대에 오릅니다.


전망대에서 증명을 남기고


전망대에서 보는 연화봉


병풍바위와 급수대


비교적 한적한 길을 걷고 있는 친구


주왕암 앞에서


주왕암을 지나


주왕굴로 향합니다.


요새중에 요새


주왕이 숨어 살았다는 주왕굴


주왕*휘



주왕굴앞


주왕굴을 배경으로


다시 주왕암


주왕암 나한전


주왕굴은 주왕암 뒷편 협곡에 있습니다.


대전사 방향으로 하산을 계속합니다.


연둣빛 숲


단풍고사리


하산 막바지


연화봉을 올려다 보며


사진 품앗이


삼거리


아직 이른 단풍


대전사를 다시 봅니다.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는 대전사


관음전내부의 관세음보살


전면 3칸 측면 2칸 주심포계 겹처마 팔작지붕 형식의 관음전


보물 제1570호 보광전


임진왜란때 전소된후 1672년(현종13년)에 중건된 전각입니다.


전면 3칸 측면 3칸 다포계 맞배지붕 형식의 보광전


약간흘림이 있는 보광전 기둥, 세월의 흔적을 느낍니다.


전면은 겹처마 다포계


명부전


명부전의 주인 지장보살


응진전


응진전의 주인 석가모니부처와 16 나한


천년이 넘은 고찰 대전사는 주왕산 전설과 함께 재미있는 설화를 전해주고 있는데 대전사의 경내에는 지금도 우물을 메운 흔적이 있고 이 우물에 얽힌 얘기가 전해집니다.

조선시대 어느 스님이 부처님께 올리는 청수를 매일 냇가에서 길어다가 올리곤 했는데 하루도 쉬지 않고 물을 떠다 공양을 올리니 귀찮기 그지없어 스님들이 의논을 한 결과 앞뜰에 우물을 파서 그 물을 길어 청수로 사용했답니다. 얼마 후 이 절에 불이 나서 절이 모두 불타버렸는데 그 뒤 성지도사가 와서 풍수지세를 보고 하는 말이 대전사는 터가 부선형(浮船形) 즉 배가 바다에 떠서 항해하는 혈(穴)이라 여기에 우물을 파니 배 바닥에 구멍을 뚫은 격이 돼 불이 나서 절이 타게 되었다면서 우물을 메우게 하였답니다. 지금도 대전사의 오른쪽 밭 가운데 우물을 메운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웅장한 깃대봉아래  대전사의 아름다운 모습


사진을 남기지 않을 수 없죠.


다시한번 대전사와 깃대봉을 올려다봅니다.


상가엔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주왕산을 올려다 보며 오늘 산행 일정을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