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의 가을 이야기
(구담봉, 옥순봉, 도담삼봉, 사인암)
산행날짜 :2019년 10월 20일 맑은 일요일
누구와 : 용*산우회
목적 : 정기산행
단양팔경중 오늘 방문지 네곳, 시계 방향으로 구담봉, 옥순봉, 사인암,도담삼봉
계란재 --> 삼거리 --> 구담봉(330m) --> 삼거리 --> 옥순봉(286m) -->계란재 (5.8km, 휴식시간포함 3시간 30분)
겸재 정선의 구담도(좌)와 단원 김홍도의 옥순봉도(우)
구담봉은 기암절벽의 암형이 거북을 닮았고 물속의 바위에 거북무늬가 있다 하여 구담이라 하며, 옥순봉은 희고 푸른 아름다운 바위들이 힘차게 솟아 마치 대나무 싹과 같다 하여 옥순이라 불리우며 조선 명종 초 단양군수로 부임한 퇴계 선생이 암벽에 단구동문이라 각명하여 소금강이란 별칭이 있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계란재주차장에 도착합니다. 계란재는 이 지역에 은거하던 토정 이지함 선생이 금수산에 올라 이 고개를 굽어보니 풍수상 마치 금빛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 계란치로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산행준비를 합니다.
금계국
소국 몽우리
계란재주차장이 새롭게 만들어진 후 많은 산객들이 방문합니다. 저 많은 산객들과 겹치지 않기위해 서둘러 들머리에 들어섭니다.
들머리
참나물이 씨앗을 맺어가고 있군요.
소국
붉나무
포장임도를 따라서 오릅니다.
참취
산밭을 가로질러 오릅니다.
도꼬마리
이른 아침 가을산의 냄새를 맡으며 갑니다.
삼거리, 이곳 이정표에 오늘 산행의 총거리가 나타납니다. 총거리 5,8km
잠시 쉬며 숲속 커피를 즐깁니다.
구담봉을 먼저 다녀오기로 합니다.
구담봉까지 400m라는데 두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해서 실제거리는 더 길게 느껴집니다.
구담봉 가는길, 아침이라 안개가 걷히지 않아 시야가 답답합니다.
구담봉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바위에 서서 구담봉을 바라보는 큰형님
후미에서 뒤따르는 일행들
앞장서 걷는 오늘의 히로인 김실장님
드디어 충주호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걸어왔던 길을 뒤돌아 봅니다. 후미 일행이 보이지 않는군요.
이 바위 봉우리를 넘으면 충주호가 손에 다을 듯 할터인데
구담봉이 눈앞에 나타납니다.
구담봉(우)과 구담북봉(좌)
장회나루와 제비봉이 아침 안개 때문에 모습이 희미합니다.
안개에 묻힌 구담봉과 충주호를 배경으로
구담봉 오르는 계단이 보입니다.
지나온 봉우리
오랜만에 산행에 동참한 김실장님
금수산 방향의 모습이지만 안개는 여전합니다.
드뎌 구담봉에 도착합니다.
먼저 인증샷을 남기고 후미 일행을 기다립니다.
단체 인증샷
전망대에 서 보지만 안개가 자욱하여 시야가 답답합니다. 안개가 없다면 장회나루, 제비봉, 말목산,둥지봉, 금수산의 모습까지 선명 할텐데
구담봉 바로 아래 말목산 발끝 정도만 보입니다. 지금 충주호엔 유람선이 뱃고동을 울리며 지나가는데 유람선에서 보는 안개 자욱한 구담봉의 모습이 어찌 보일지 궁금합니다.
안개가 걷히길 기대해 봅니다.
되돌아가는길,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있습니다.
개미취
안개 걷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서서히 베일을 벗고 있는 둥지봉
흰바위산이 둥지봉입니다. 둥지봉을 배경으로 큰형님
안개가 지나가니 다들 얼굴이 밝아집니다.
지나온 길, 앞 가운데가 구담봉, 그 뒤로 말목산이 보입니다.
파란 하늘이 조금씩 열리며 산이 밝아집니다.
둥지봉을 품은 가은산의 모습
산조팝나무가 씨앗을 달고 있군요.
옥순봉을 향하여
좀작살나무열매
경사바윗길
금새 하늘은 파랗게 변했구요.
옥순봉에 도착합니다.
충주호와 가은산, 오른쪽 말목산의 모습이 시원스레 나타납니다.
옥순봉 단체 인증샷
충주호와 둥지봉, 가은산, 말목산
금수산 방향
이제부터 옥순봉에서 전망을 보며 사진찍기 놀이를 합니다.
옥순대교
제천 비봉산이 보이는 듯
너럭바위에서,
강선대가 이렇게 생겼을까요? 옥순봉과 구담봉 사이 아래 어딘가에 강선대라는 곳이 있었는데 사람 백여명이 앉아 놀수 있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어 지금은 볼 수가 없는 곳이랍니다. 강선대엔 48세에 이곳 단양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 선생과 기생 두향에 관한 슬프고도 아름다운 러브스토리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이황이 48살 때 단양 군수로 부임 했는데 그 고을 관기였던 18세 어린 두향이 첫눈에 이황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워낙 성격이 대나무 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던 이황도 부인과 아들을 잇따라 잃었던 터라 자연스럽게 두향과 사랑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해요. 두향이 외모며 글솜씨며 거문고 솜씨가 특출나서 이황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회자정리라고나 할까 사랑을 시작한지 꼭 9개월만에 이황이 경상도 풍기 군수로 전근 발령을 받았다고 합니다. 두사람 모두에게 대단한 충격이었겠지요. 관기를 못 데리고 다니는 당시의 풍속 때문에 결국에는 두향이를 혼자 두고 이황은 풍기로 떠나 갔는데 떠나면서 꾸린 짐속에는 두향이가 준 수석 2개와 매화 화분 한개가 있었다고 합니다. 떠나기 전 마지막 밤에 마주 앉아 주고 받았던 한시가 백미에요.
死別己呑聲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
生別常惻測 (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 없네)
그리고 이황이 말끝을 맺습니다
내일이면 떠난다. 기약이 없으니 두려울 뿐이다.
두향이가 말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시 한수를 썼습니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들고 슬피 울며,
어느듯 술 다하고 님마져 가는구나.
꽃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이날 밤의 이별은 결국 너무나 긴 이별로 이어져 1570년 이황이 70세로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한번도 다시 만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이황과 이별을 한 후 두향은 관기를 그만두고 이황과 즐겨갔던 남한강 강가에 움막을 짓고 평생을 살았다고 합니다.
이황이 관직을 떠나 은퇴해서는 안동에 있는 도산 서원에서 은거했는데 한때는 병세가 위독해서 자신도 모르게 옷을 입은 채로 설사를 하게 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그 경황에서도 그가 늘 부르듯 매형(梅兄)에게 불결하니 마음이 절로 미안하다고 매화 화분을 딴 방으로 옮기라고 하였답니다. 기록에 의하면 그가 돌아가시던 12월 8일 아침에 매화화분에 물을 주라 하셨답니다. 이날은 무척 맑았는데 갑자기 오후 다섯시 쯤 흰구름이 집위로 몰려들더니 눈이 한치 남짓 내렸데요. 조금뒤 선생은 누운 자리를 정돈하라고 하셨데요. 부축하여 일으키자 앉으신 채로 숨을 거두셨답니다. 그러자 구름은 흩어지고 눈도 그쳤다고 합니다.
두향이가 퇴계 선생에게 주었던 매화는 그 대를 잇고 지금도 안동의 도산서원 입구에서 그대로 꽃을 피우고 있답니다. 그가 두향을 단양에 홀로 남겨두고 말년을 안동 도산서원에서 지낼 때 어느 날 두향이 인편으로 난초를 보내왔답니다. 단양에서 함께기르던 것임을 알아채린 퇴계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답니다. 이튿날 새벽에 일어나 자신이 평소에 마시던 우물물을 손수 길어 두향에게 보냈습니다. 이 우물물을 받은 두향은 물을 마시지 못하고 새벽마다 일어나서 퇴계의 건강을 비는 정화수로 소중히 다루었다고 합니다. 어느날 이 정화수가 핏빛으로 변함을 보고 퇴계가 돌아가셨다고 느낀 두향은 소복차림으로 단양에서 머나먼 도산서원까지 4일간을 걸어서 찾아가 돌아가신 님을 먼발치에서 뵈었다고 합니다. 다시 단양으로 돌아온 두향은 결국 남한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고 하구요. 그래서 지금도 퇴계 종가에서는 두향의 묘에 벌초하고 그녀의 넋을 기린다고 합니다 (스토리 캡쳐)
옥순대교
너럭바위에서
금수산 방향
구담봉(앞에山자 모양)과 그 뒤 제비봉
옥순대교 배경으로 한번더
충주호에 유람선이 보이고
하산을 시작합니다.
생강나무 카로티노이드
하산길엔 가을 오후 햇살을 듬뿍 받고 내려옵니다.
날머리
도담삼봉, 홍수때 강원도에서 떠내려 왔다가 남한강 상류에 정착하게 되었다는 전설을 지닌 도담삼봉은 도도히 흐르는 남한강 강줄기 속에서 그 위용을 자랑하며 꿋꿋이 서 있더군요. 조선건국의 일등공신인 정도전은 이곳의 절경에 감탄하여 자신의 호를 '삼봉'으로 지었고 남봉위에 정자를 짓고 자주 찾았다 합니다.
또 전해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도담삼봉을 뺏긴 강원도에서 세리들을 보내어 이곳 단양 사람들에게 세금을 징수 하였답니다. 그때 어린 꼬마가 나타나 세리들에게 도담삼봉을 강원도로 도로 가져 갈것을 요구했답니다. 그말을 듣고 세리들은 강원도로 돌아갔다합니다. 이문제를 해결한 그 어린꼬마가 삼봉 정도전 이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김실장님과 삼봉
큰형님과 삼봉
해피한최님과 삼봉
삼인과 삼봉
보트를 즐기는 사람들과 시간을 즐기는 큰형님
사인암을 보기로 합니다.
맑은물이 흐르고
병풍처럼 서있는 사인암
사인암과 청련암
청련암 극락보전
극락보전은 아미타불을 모시는 전각으로 좌우에서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이 협시하고 있습니다. 좌보시 대세지보살이 도지정문화제 제309호로 지정되어 있답니다.
불공드리는 해피한최님, 우리 일행의 소원까지 대신해서 기도를 합니다.
병풍바위산으로 둘러쌓인 청련암
사인암, 운계천가에 수직으로 우뚝 솟은 사인암은 석벽에 가로세로 바둑판 무늬가 선명하고 그 위에는 푸른 창송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있습니다.
고려말 학자였던 역동 우탁이 ‘사인(舍人)’이라는 관직에 있을 때 사인암 근처에 초막을 짓고 기거했답니다. 그래서 조선 성종 때 단양군수로 부임한 임재광이 우탁을 기리기 위해 이 바위를 사인암이라 이름 지었다고 합니다.
바둑판 모양이 선연한 암벽의 격자무늬와 푸른 노송의 어우러짐은 기묘한 조화를 형성하고 있으며 특히 운계천의 맑은 물이 푸르고 영롱한 옥색 여울이 되어 기암절벽을 안고 도는 수려한 풍광을 자랑합니다.
운계천 너럭바위에 앉아 사인암을 감상합니다.
사인암과 사인
마지막으로 사인암을 올려다보며 오늘 모든 일정을 마무리 합니다.